페미니즘이 확산하면서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날카로워졌지만, 미디어는 여전히 성차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차별’은 한 성이 다른 성을 차별적으로 다루는 관행을 말한다. 가부장적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주로 여성의 역할이 약화 되어 있다.

 분홍색은 여자 화장실, 파란색은 남자 화장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주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색깔로 구분한 남녀 화장실 인테리어는 물론, 장난감 방에도 소꿉놀이와 인형, 공놀이와 로봇을 따로 분류해놓았다.

 서울 노원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실습 중인 이온유학생은 “아이들이 이미 가정에서 성 역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 역할을 선생님들이 나누어 교육하지는 않아요. 인형과 로봇이 있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여자는 인형, 남자는 로봇 앞으로 가더라고요. 화장실 인테리어도 아이들과 함께 꾸민 거예요.” 이어 어린이집 원장이 말을 덧붙였다. “같은 종이접기를 하더라도 여자아이들은 꽃을 접고 남자아이들은 무기를 접어요.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원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어요. 부모님을 보고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책에서 보고 TV에서 봤다고 했어요.”

KBS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中, 여성 주인공이 청소년에게 성 접객 행위로 김밥을 파는 장면.

 공영방송 KBS가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주말드라마에서 그릇된 성 인식을 시종일관 코믹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을 분노케 했다. 최근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다 시장에 김밥집을 낸 주인공들이 술집 호객 방식으로 청소년 손님을 영업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여성을 눈요깃거리로 여기는 남성들의 시선, 그것을 이용해 장사하는 김밥집 여성들을 그려내며 여성을 상품화한 것이다.

 미디어 속 잘못된 성 인식은 인물들의 직업에서도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에 따르면 드라마 등장인물 중 사장이나 국회의원, 의사 등 전문직 배역은 64%가 남성으로 여성의 두 배 수준이다. 반면 일반직이나 무직, 비정규직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코미디 빅리그’에서 섹시한 춤을 추며 동냥하는 여성들.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지난 4월 19일, <코미디 빅리그>에서 개그맨 황제성은 “나 봐라. 5분 안에 2억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무대 뒤편에서 치어리더 박기량과 안지현이 등장했다. 그들은 섹시한 춤을 추며 “한 푼만 줍쇼”라고 말했고, 남성 관객 역할의 출연자들은 두 사람을 향해 지폐를 던지며 환호했다.

 현재 방영 중인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아내에게 꾸밈 노동을 강요하고,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등 남편들의 불편한 행동으로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예능 프로그램의 61.5%가 성차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과 없이 방영하면서 성 역할 고정관념을 등장시켰다는 이유였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성별, 나이별 만족도

 이러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은 일부 남성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페미니즘 소설로 화제인 <82년생 김지영>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될 서적이 되었다. 영화로 제작된 82년생 김지영은 방영 기간 동안 예매율이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에게 평점 1점 테러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부 남성들은, SNS를 통해 위 서적을 언급한 연예인들에게 “메갈 인증했구나. 한심하다”, “사과 안 하냐?”는 악플로 해당 연예인 기사의 댓글 창을 테러하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사내 성희롱부터 디지털 성폭력까지 여성의 인권이 끊임없이 파괴되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 속 성차별은 이러한 범죄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피해자들이 침묵하거나 자책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성에 대한 고착화된 편견과 차별의식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 미디어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희지 최가온 기자  webmaster@kkob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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