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생ㅇㅇ’등의 단어를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 ‘인생’이라는 것은 일평생에 남을만한 것을 가리키는 접두사로, 예를 들어 ‘인생여행’이라 하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일컫는다. ‘인생서점’이라면 어떨까.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사고 읽고 접하는, 소설속에 나오는 그 곳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의정부 민락 제 2지구에 가면 ‘인생서점’이란 간판을 내건 곳이 실제 있다. 기자에게는 이미 잊을 수 없는 기억의 공간이다.

대로변에 있어 찾기는 쉽다. 노란리본은 의정부에 살고있는 세월호 유가족이 직접 붙였다고.

“작년 12월에 개업했어요. 이제 막 1년이 되었네요. 이런 공간도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얻은 것이 지난 1년의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또 새로이 써내려가야겠죠.”

인문학 책방, 마을 카페, 모임의 공간, 문화행사 등 다양한 기능을 담아내는 ‘문화 놀이터’를 표방하고 있는 ‘인생서점’의 대표 김재연(38)씨의 말이다. 이 서점은 특이하다. 우선 서점의 실내 공간에 비해 책이 많지 않다. 많이 팔리는 참고서나 수험서 등은 아예 없다. 직원들은 자원봉사 개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 서점은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 곳에는 사람들의 방문이 끊기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인생서점에는 문제집, 참고서 등 타 서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

“불편하지만 시간을 내서 방문하고, 책을 사주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서점을 지켜주지 않으면 서점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문화 놀이터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합니다.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북 토크쇼나, 마을 축제 등을 마련해 주민들과 소통하는 거죠.”

지난 11월에는 책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축제를 1주일동안 열었다. 이런 결실을 맺기까지 걸린 시간이 1년이다. 김 대표는 인근 상가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락 제 2지구 중에서도 이쪽은 덜 개발된 쪽입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메가박스 부근이 번화가라고 할 수 있죠. 서점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종종 들었습니다. 이곳은 그런 번화가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 대신, 나름대로 주민들과 같이 공감하며 형성할 수 있는 따뜻한 문화적인 색깔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어요. 마을 축제를 개최할 때 주위 상인분들이 홍보를 해 주시겠다고 포스터를 두 장씩 가져가서 유리벽에 붙이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홍보를 진행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인생서점 주위에는 갤러리, 애견카페 같은 특색있는 업소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조용한 거리에 격조있는 문화 색깔이 칠해지는 느낌이다.

“저는 한때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정치인은 자기 지역, 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지금 저는 의정부 주민입니다. 의정부가 가지고 있는 군사도시, 미군기지 이미지는 문화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나가는 서울의 핫플레이스 대신 이곳에 굳이 자리를 잡고, 꾸준히 회원을 모집하는 이유도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해 의정부를 조금씩 바꿔나가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죠. 제가 서점을 개업한 이후 비슷한 서점이나 문화공간을 만들겠다 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만드는 김재연 대표.

김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 서점을 찾은 손님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손님과의 대화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왔어요. 전직 국회의원이 하는 서점이 어떻게 운영되나 하고 궁금증에 오는 사람도 있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을 타고 동네 주민들만이 아니라 일부러 멀리서 오는 손님도 점점 늘었네요. 방문하는 손님들이 책만 사가지는 않아요. 음료만 사서 책을 읽다가 가는 분들도 있고, 다른 손님과 책 이야기도 하고, 문화행사에 참여하기도 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서점의 단골 손님이 늘어가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그렇게 알음알음 손님들이 모여서 지금은 서점 등록 회원 수만 600명쯤 됩니다.”

서점은 그리 크지 않다. 이로 인해 최근 고민이 생겼다 한다.

 손님과 회원이 늘어나면서 김 대표와 운영진의 행복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손님을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점은 17평 정도에 불과해 여러 사람이 들어와 문화행사를 하기에는 비좁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경기도에서 동네 서점 활성화를 위해 공모한 ‘힘내라! 경기 동네서점’에 선정된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저는 책 전문가도 아니고, 문화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에요. 장사나 사업 마인드도 없고,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약점이 많았죠. 가지고 있던 것은 의정부를 바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지 하나 정도? 그래서 다른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함께 이 서점을 개업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간 활용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번에 공모전에 대상으로 선정되어 리모델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전문가의 손을 빌어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행사 등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송현로 82번길 85에 위치한 인생서점은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회원 등록을 하면 책 구매 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무료로 제공되고, 인생서점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 행사 등에 대한 알림을 받을 수 있다.

김준영 기자  aquarai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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