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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와의 하늘여행 10시간네덜란드 행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들려준 인생 이야기

 

 중국 발 네덜란드 행 KLM 비행기 안. 낯선 외지에서 시작되는 여행. 스무살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은 말 그대로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난 7월 중순 어느 날. 인천공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갈 때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정상가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해 중국 땅을 경유하는 티켓을 산 터였다. 몸집 큰 외국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티켓에 적힌 숫자와 기내 복도에 새겨진 좌석번호를 대조하며 내 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눈을 돌렸다. 

옆자리 승객은 누구일까. TV에서 보는 사람들이야 이곳 이코노미석에는 타지 않을 것이니 연예인이 옆자리에 앉을지 모른다는 환상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그래도 옆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여행 기분은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목적지까지 하늘을 나는 시간은 10시간. 이 시간을 즐거운 기분으로 가느냐, 입 꾹 다물고 불편함을 인내하며 가느냐는 순전히 그날의 운이다. 

 한국인이 눈에 띄었다.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은 무조건 반가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낯선 곳에서 한국어로 적힌 글을 본다거나 한국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지 않는가.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는 한국인은 보는 사람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의 유명인사다. "아니 이 분은 여행작가, 한비야 선생님이 아닌가."

 한비야씨는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의 교장이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자신의 여행기를 책으로 출간해 유명해진 여행작가다. 많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뽑힌 인물이이다. 이런 명사가 나와 같은 비행기, 그것도 내 옆 자리에 앉을 줄이야.  운이 좋아도 억세게 좋은 날 아닌가. 가슴이 뛰었지만 무슨 말이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한비야 선생님이시죠.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비야와 하늘에서 10시간 밀착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말문을 트고 보니, 이날의 그는 우리와 같이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객일 뿐이었다. 기내식이 나올 땐 나와 맥주와 와인잔을 가볍게 부딪혔고, 어둠이 깔려오자 몸을 좌우로 틀며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이리저리 찾아보는 것도 보통의 여행객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대중을 상대로 강연할 때 보이던 당찬 커리어 우먼의 모습보다 이코노미석에서 고생하는 인간적이고 소박한 여행객의 모습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녀를 동경하는 이유도 그녀가 낯선 곳에 대해 도전을 멈추지 않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녀는 큰 행운을 잡아 기쁨에 들떠있는 옆자리 승객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에 대해 조언해주었다.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라". 

 한국의 젊은이는 어디에 가든 적응을 잘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런 말과 함께 맥주와 와인잔을 쨍하고 부딪힐 때 그것은 제2의, 제3의 한비야가 될 지 모르는 젊은이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의식 같았다. 동기부여를 해 주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듣는 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녀는 그 순간 몰랐을 것이다.

 하늘에서의 10시간이 흘러 땅에서 헤어져야 할 시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그 순간. 그녀는 명함 한 장과 사인을 건네며 자신의 인생모토를 알려주었다.

 "하루 한 명 이상 기쁘게 하기."  하루에 한 명이 적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한 달이면 30명 한 해면 365명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하루가 너무 바빠 누군가를 기쁘게 하지 못했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편지나 이메일에 답변을 해준다고 한다. 자신의 그 편지 한 통이 답장 받은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후 혼자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과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를 겪을 때마다 그녀의 '10시간 조언'은 나에게 큰 방향침이 되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뜻하지 않게 노숙을 해야 했을 때. 택시 기사의 갑작스러운 친구 요청을 받았을 때. 꼭 타야할 버스를 놓쳤을 때. 우산없이 쏟아지는 폭우를 맞을 때. 순간 순간마다 좌절하지 않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되어 주었다.

 학교로 돌아와 바쁘게 지내다보니 아무도 기쁘게 해 주지 못하고 지나는 날들이 적지 않다. 그녀에게 "하늘에서 10시간을 함께 한 학생입니다"라고 편지 한 통 써 보내야 겠다. 그게 그녀를 기쁘게 해 주지 않을까.

 

함수민 기자  robo03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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